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e 262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fun8tIJTDMY)] [youtube(E-8CQp2_BLc)] ||[youtube(kKKGXeg7udE)]|| || 복좌기 레플리카인 N262AZ || >'''"What was that? What the hell was that!? It went by like we were standing still!"''' >'''"저거 뭐야? X발 저거 뭐냐고!? 우리가 멈춰있는 것 마냥 지나갔잖아!"''' >---- >― 미군 조종사[* 두번째 영상 45초부터. 포탑 돌리기 전에 날아가는 스피드로 미군에게는 충격과 공포였다.] >'''''Going by 2 O'clock! What the hell is it?!''''' >'''''2시 방향 조심해! 도대체 X발 저게 뭐야?!''''' >---- >― 무전 [[메서슈미트]]가 개발한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전투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나치 독일)|독일 공군]]이 운용한 [[제트전투기]]/[[전폭기]]이다.[* 히틀러의 희망사항인데 이 희망사항은 연합국인 미국이 달성했다.] 일명 '슈발베(Schwalbe, [[제비]])', 융커스 유모004 터보젯 엔진을 2기 장비한 Me 262의 성능은 우수한 편이어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모든 전투기보다도 빨랐다. P-51 머스탱이나 Yak-9, '''La-7'''[* [[이반 코제두프]]가 격추.]에게 격추당한 적이 있어서 프로펠러 전투기에게 격추된 최초의 제트 전투기이기도 하다.[* 성능은 뛰어나나 이는 독일의 공군 인력에 문제가 있었는데, 숙련된 조종사는 많이 죽었고 이에 새로운 조종사를 투입하였는데 이들이 제트 전투기에 대한 훈련을 잘 못 받은 데다 연합국은 물량전을 시도하여 숙련된 조종사들이 꽤나 있었기 때문에 결국 제트 전투기들이 피해야 하는 선회전을 연합국의 프롭기 조종사들이 끌여들여 격추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부 제트 전투기의 운용을 잘 아는 숙련된 조종사들은 속도를 살려 호위전투기를 가뿐히 떨쳐버리고 폭격기를 잡을 수 있었다.] Bf 109 애호가였던 [[아돌프 갈란트]] 중장도 "난 Bf 109 5대보다 이 녀석 하나를 고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참고로 갈란트 중장은 Fw 190이 실전배치되는 중에도 Bf 109를 선호한 사람이다. >'''"뒤에서 [[천사|누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마치 천사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 als wenn ein Engel schiebt.)'라고 했다고 한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 >이 기체를 탑승해 본 [[아돌프 갈란트]] > 공학자도 숙련공도 모자랐던 데다가 중요한 광물자원마저 부족해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다. 또한, 시험비행에 쓸 연료마저 모자랐고, 폭격으로 공장까지 파손되었다. 결국 Me 262는 초라한 공장에서 조잡한 재료에 미숙한 직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겉면을 매끈하게 만드느라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e 262는 당대 최고의 전투기였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 대전사' <독일 제트 전투기> 편 전후 Me 262와 미군의 신예 제트 전투기인 [[P-80 슈팅스타]]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았던 [[척 예거]]는 "기술자들에게 P-80과 Me 262의 성능이 거의 동등하다고 말했더니 [[록히드 마틴|그들]]이 기겁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일반적으로는 세계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1938년에 이미 융커스 사에서 EF009 제트 전투기를 개발했으며 [[하인켈]]사가 1939년에 먼저 [[He 178]] 제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그 뒤를 잇는 제트 전투기인 [[He 280]]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Fw 190와의 경쟁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의 제트 엔진에 관한 무관심 덕분에 Fw 190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 최초로 개발된 제트 전투기는 아니다. 하지만 He 280과 함께 공기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당시에는 독일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였기에 나치당을 비롯한 독일군 수뇌부가 새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시제기 3대만 만들라는 지시만 내려왔음에도 1942년에 피스톤 엔진을 사용한 시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했으며 [[BMW]]의 003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 엔진이 자꾸만 말썽을 부렸는데, 한번은 시험비행 도중 엔진 트러블이 일어나서 예비로 장착했던 융커스 피스톤 엔진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메서슈미트 사는 더 크고 무겁지만 쓸 수 있는 엔진을 달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융커스 유모 004 터보제트였다. 그리고 이로써 Me262는 드디어 제트 전투기가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명령 하나로 이 전투기는 완성된 1942년이 아니라 1944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다. [[파일:external/www.vho.org/Image796.gif]]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엔진 덕분에 Me 262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후퇴익이다. 왜 엔진 덕분인가 하면 고속 성능을 위해 채용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엔진 때문에 기체의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날개에 엔진을 달고 뒤로 젖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들어놓고 보니 속도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염두에 두고 후퇴각을 조절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도 시제기인 [[XP-55]]나, CW-21 등의 기종에서 후퇴익을 적용하기도 했다.[* 날개 앞에 후퇴각을 준 프로펠러 항공기는 의외로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DC-2/3이다.] 실전배치되었을 당시의 전황이 급박하다보니 주로 폭격기 요격에 많이 투입됐는데, 대전 말기에는 기수에 50mm 기관포를 장비하여 장거리에서 강한 화력으로 폭격기를 격추한다든지 심지어는 R4M 공대공 로켓을 사용하기도 했다. 로켓의 경우 위력도 위력이지만 여러 발이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모습 때문에 폭격기 편대를 흐트러놓기 좋았다. 그리고 이런 무장과 속력을[* 10,000m 상공에서는 속력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프로펠러기들보다 훨씬 빠르다.] 바탕으로 [[호위기]]와의 교전을 회피하고 폭격기만 공격하고 돌아오는 전술을 사용했다. 물론 호위기들이 그냥 보내줄 리가 없으니 [[Bf 109|다른]] 루프트바페의 [[Fw 190|전투기]]들이 호위기와 교전하는 동안 대열 사이로 침투해 폭격기만 공격하고 오는 방법이었다. 물론 워낙 빠르다보니 폭격기의 방어기총으로도 맞추기 어려웠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